[불교공뉴스-문화] 오일장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영락없이 야채실에선 먹다 만
채소들이 시들어 있다. 미처 장에 가지 못해 마트에서 사온 채소들
이 한 번 해 먹고 남은 것들인데도 이미 싱싱함을 잃었다. 저녁 식
탁에 올릴 반찬감으로 시원찮게 여겨져 고민스럽다.
 
바쁜 일에 쫓기다 대충 마트에서 구입해 배달시킨 물건들인데
아무래도 살 때부터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식탁에 있는 달력을 보니
마침 장날이다. 잘 됐다 싶어 풀썩거리며 장바구니를 들었다.

대전 근거리에 위치한 옥천에서는 5일마다 장이 열린다. 그래서
오일장이라고 부르고 다른 지역도 그 특색에 맞게 칠일장, 십일장
등이 열린다. 서울깍쟁이에게 오일장은 구경거리가 많아 재미가
쏠쏠하다. 으레 장날이면 지갑에 잔돈을 두둑이 넣어 두고 소풍가듯
 즐거운 흥얼거림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재래시장엔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직접 키운 채소를 다듬는 할
머니, 산에서 캐온 나물을 수북이 안은 아주머니, 바삭하게 튀긴
도넛을 팔고 있는 아저씨까지 구수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
장 통이다. 이곳에서 옛날 옛적 흙길 바닥의 장은 볼 수 없지만
넉넉한 인심만은 그대로인 것 같다. 장바닥에 넉넉한 정으로 그날 밥
상은 풍성할 테니 적어도 고단한 하루를 맛있게 맞이할 수 있지 않
을까 싶다.

재래시장은 입구가 정해져 있어도 사방팔방이 모두 북적거린다.
옥천장 역시 골목마다 장이 서다 보니 입구가 따로 없다. 시내 둑
길을 따라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장이 열린다.
그로 인해 작은 트럭이나 자동차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문명의 이기들은 물러앉고 사람이 주인이 되어 움직이는 장터에 오면 발
걸음부터 느려진다. 터를 잡고 앉으면 누구랄 것도 없이 그 자리의
주인이다.

 

그래도 늘 엇비슷한 곳에서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
무언의 질서가 여기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 종이박스 위의 갖가
지 야채와 채소들을 계속 만지작거리는 손들이 태양에 반사되어
반들거린다. 그래선지 유독 야채들이 싱싱해 보인다. 내 생각 탓인지
도 모른다. 허나 장에서 구입한 야채들이 마트에서 산 것들보다
분명 오래가는 것을 보면 신선도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의 장보기는 나름대로 순서가 있다. 먼저 입구에서부터 찬찬
히 한 바퀴 둘러본다. 그 다음 자주 가는 할머니가 나와 계신지를

확인한 후, 뒤에서부터 장을 보면서 앞으로 걸어 나온다.
간혹 단골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어디서 살까 고민하다 다음 장까지
기다린 적도 꽤 있다.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 돌아오는 장날에 뵐 수 있어서다.
단골이 괜히 단골인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묻는 사이 장은 언제나 흐뭇한 풍경들로 가득 찬다.

 

겨울을 지낸 각종 나물들이 나와 눈을 맞추려고 안달을 떤다. 이
름도 모르는 봄나물에 찰랑거리는 도토리 묵 등 수수한 풍경들이
복잡한 머리를 환기시킨다. 초등학교 소풍을 가던 날, 보물찾기를
하며 도토리를 주어 양손으로 장난했던 기억. 어릴 적 할머니의 손
끝에 묻은 누룽지를 떼어 먹으며 오물거리던 기억들로 인해 갑자기
허기가 진다. 따끈한 호떡을 먹으며 두 바퀴째 돌고 있는데 한 모
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할머니에게 자꾸 시선이 간다.

장을 서는 사람이나 장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가 아니라
무리를 이룬다. 그러니 고개를 신문지 바닥 쪽으로 잔뜩 숙이고 뭔
가에 열중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가까이 가보니 마늘을 까고 계셨다. 흙 주름 잡힌 손
에 방금 깐 마늘이 유독 뽀얗게 보인다. 아기 밥그릇만 한 대접에
소복이 쌓인 깐 마늘과 검버섯 핀 거무티티한 손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나는 유독 그 할머니에게 정이 간다. ‘할머니’라는 말
만 들어도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고 마냥 주저앉아 기대고 싶은 기
분이다. 손에 흙가루 검게 묻히며 마늘을 까고 계신 할머니. 혹여
마늘에 흙이라도 묻으면 사가는 이가 싫어할까 싶으신지 까기가

무섭게 연신 입으로 호호 불어대신다.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마늘 껍
질이 미풍에 날려 흩어진다. 장날의 하루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장마당 언저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오면 사람들의 말소리
로 떠들썩하다. 오일장은 물건을 팔고 사는 일에 그치지 않고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묵은 이야기들이 쏟아진
다. 그뿐이랴. 장날은 정과 흥이 뒤섞여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장날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물건만
을 사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
딪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순간 사람소리, 웃음소리, 바람소리에
도 훈기가 도는 것 같다. 마치 살가운 호흡으로 전해져오는 마음들
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오는 것처럼.

 

오일장에 정이 들면서부터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이 줄었다. 차
가운 조명 속에서 으스대기라도 하듯 반듯반듯하게 진열돼 있는 마
트의 물건들을 볼 때면 풍요가 가져다 준 편리함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트를 가면 늘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건들을 구입하
게 된다. 카트에 물건들을 가득 채우고 이것저것을 구경하는 것으
로 스트레스를 푼 적이 있다. 잠깐 좋은 기분에 사로잡혀 아무 생
각없이 덥석덥석 물건을 사다 보면 거의 돌아와 물건을 풀 때, 후
회하기 일쑤다. 버릇처럼 되어 버린 습관들로 허리가 휘청거릴 것
을 알면서도 말이다.

요즘 마트에서 찬거리를 고르는 주부들의 얼굴 표정이 그다지 즐
거워 보이지 않는다. 하늘 모르고 치솟는 물가 때문도 있지만 그저

일상처럼 되어버린 습관인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근사하
게 진열된 물건들은 그저 고르면 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깨알
같은 정보로 물어볼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물건을 팔고 사는 일
이 마치 기계의 손놀림 같아 교감을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 말 그
대로 쇼핑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날이면 대형 할인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얼마나
무미건조한 일인가. 카트에 타고 있는 아
이의 기억에 어떤 것들이 추억될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쩌다 아파
트 엘리베이터나 주차장에서 이웃들과 마주치면 할 말이 없어 서
먹해 괜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다.

단골 할머니가 담아 놓은 야채 속에서 고추가 인사하듯 삐죽 나
와 먼저 아는 체를 한다. 비틀어진 오이가 섞여도, 흙이 묻고 잘 정
돈되지 않은 시금치일지라도 오일장에서 사는 것이 믿음직스럽다.
못생긴 야채도 아무 불평 없이 덥석덥석 집어 들면 할머니는 고맙
다는 말 대신 덤으로 한 움큼을 얹어 주신다. 랩으로 포장되어 있
지 않기에 덤은 할머니 맘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거절해도 할머
니의 재빠른 손에 쥔 덤은 이미 봉투 안에 들어있다.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고집도 세신 할머니. 나를 알아보시는 눈치라 미리 준비
해 온 잔돈을 계산에 맞게 셈해 드린다. 빠른 계산이 서툴기도 하
지만 잔돈이 없어 쩔쩔 매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과 달리 오일장에 오면 늘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 장터를 벗어날 즈음에는 양손의 장바구니가 묵직하다. 장
바구니 가득 사람 사는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그래선지 양손의 무
게는 고달픔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식탁에 풀어놓았다. 이내 집안에 싱싱한
기운이 감돈다.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에도 평온이 깃든다. 마
치 누군가와 환담을 나누다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답답한 마
음을 덜어놓고 온 기분만은 분명하다. 오늘 저녁상에 수다스런 내
모습이 그려진다.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오물거리는 입들을 상
상하니 벌써 배가 불러온다.

할머니의 주름진 그 미소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

<저자 소개> 김영미 서울출생,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2012 명작선 한국(韓國)을 빛낸 문인(文人)》(천우) 선정, 작가한국문인협회 회원, 옥천문인협회 감사,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정지용 시와 주체의식'(태학사, 2015) '2016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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