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음영(陰影)

303동 303호
새벽 두 시에 불이 꺼지면

누가 살고 있을까
마주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
하얀색 자동차 주인일지
상가2층 미용실 단골손님일지
수영장 정기 회원일지

사각형 모양의 아파트에는
조명 사이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303동 303호 그림자처럼
이사 가는 날에도 만나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

 무너져가는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여행하는 기억이 남아서
간이역에 쉬지도 않고
달리고 싶은 차표 없는 이방인
싫어도 좋은 듯
미워도 사랑스러운 듯
나와 마주하고 있는 순간에도
수많은 이야기는 흔적을 남긴다

성주 참외를 먹으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
오래전 사진들
새로운 소식 인기 검색어
넓은 화면과 마주보며
10월 어느 하루를 써내려간다

지내온 날들

 반복의 일상에서
새롭게 한두 번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래 되어가는 시간에 대한
만남이며 새로움이다

허무함의 반성이며
노력의 결과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누구에게나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보상이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 신제품처럼
오래되어 갈수록
삶의 즐거움은
지혜를 쌓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

바람이 붓을 삼아
아스팔트 위에 수채화를 남길 때
돌아올 수 없는 이사를 준비한다

책이랑, 이불이랑
버릴 것 남길 것
박스에 봉투에 쌓아둔 먼지에
다섯 번의 이사를 견뎌온
쓸모 있는 소품들 차에 실리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겠지

오래 묵은
김치가 쉴 때쯤이면
슬슬 시큼한 냄새
다시금 새어나올 것이다

빈 그릇 위의 뼈다귀

 잔인하다는 느낌을
굳이 다르게 표현하자면
여러 가지 단어가 있겠지만
그릇 두 개, 탕 하나
뜨거운 국물에 모든 살을 뜯기고서야
빈 그릇에 뎅그렁
버려지는 뼈다귀만큼이나 할까 생각해본다

뼈다귀 하나 젓가락으로 도려내면서
먹어야 하는 사람과
펄펄 끓여야 하는 요리사와
주방 뒤에 쌓여가는 뼈다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햇살 좋은
나무에 기대어

온종일 꿈속을
여행하고 살아가는

밤하늘 뭉게구름
욕심쟁이 코알라

 <약력> 이태진
1972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으로 2007년 계간 『문학사랑』으로 등단하여 시집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공저 『인생의 받침돌이 되어줄 UCC 마음사전 2g』. 〈제 11회 대전예술신인상〉, 〈제 42회 인터넷문학상〉을 수상. 무대조명 디자이너, 공연 공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solosun@hanmail.net
facebook : 이 태진(Leetaejin)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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