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마냥 꽃밭을 어정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 가는 때가 늘어가면서 나는 스스로 나이 먹었음을 깨닫는 때
가 많다. 어찌 생각하면 소란한 마음을 되도록 멀리 두고 싶은 심
정에서 온 버릇인지도 모른다. 마음 가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부부는 한 달에 서너 번, 금강 휴게소로 향한다. 여행 중 들르
는 곳이 아닌 그냥 마음 내키면 주저 없이 간다. 문득 남편에게 “또
금강 휴게소”냐고 말했더니, 심히 못마땅한 눈치다.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심정인 것 같다.

주말 아침 잔잔한 비, 금강의 부름을 받은 듯 차를 몰았다. 금강
휴게소 전망 데크에 서면 금강유원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
속 험준한 산자락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을 라바댐이 막고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경관을 해쳐가면서까지 이 댐을 만든 이유는 발전
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금강 휴게소가 자리한 곳은 옥천군 동이
면 조령리. 이곳은 옥천의 오지였던 강마을이었다. 자연경관이 좋
아 휴게소를 설치했지만 험준한 산세 때문에 휴게소에서 사용할 전
기를 끌어 올 수 없었던 게 이유다.

이곳에 설치된 수력발전소는 여분의 전기를 조령리와 금강유원
지 인근 마을에 공급하고 있다. 고속도로휴게소와 수력발전소의
건설로 금강유원지의 자연경관은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유원지 주
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질도 높여 주었다. 자연과 인공이 서로 상
생하는 아름다운 곳이라 여겨지니 그 풍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한결 강바람이 신선하다.

금강유원지의 잠수교 구실을 하고 있는 라바댐을 건너면 아름다
운 강마을에 쉽게 이를 수 있다. 강변길이 시작되는 이곳에 서면
옥천의 강촌 속으로 빠져든다. 금강 언저리에 둥지를 튼 강마을을
거치기 전 포장마차는 필수코스다. 주인 부부의 푸짐한 인심과 금
강, 그 언저리의 산 그리고 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변화무쌍한
가경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옆에 나란한 포장마차를 어
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뒤에도 이 강은 쉬지 않고 흐를 것을 생각한다.
고독감이 밀려온다. 그래선지 이곳에 오면 왠지 사람들이 그리워
진다. 이곳의 별미는 주인이 직접 잡은 물고기로 요리한 도리뱅뱅이
와 빙어튀김, 민물매운탕이 최고다. 떠날 때까지 강변을 잠시라도
벗어나지 않기에 그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수확 철이면 직
접 지은 농산물도 살 수 있다. 거저 가져가는 거나 매한가지. 암튼
마음 가득 무엇이 들어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곳임에는 틀
림없다.

배를 채우고 휴게소에서 커피를 뽑아 다시 내려온다. 강변길을
따라 걸으면 급할 것이 없다. 유유자적 풍경을 즐기며 느리게 마을
과 마을을 잇는 길을 걷노라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느리게 걸
으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길은, 아름다운 강마을과 그곳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금강 언저리에 둥지를 튼 금강 휴게소는 옥천의 하늘아래 숨바꼭
질 하듯 산속에 숨어 있는 자연의 빛에 닿아 있다. 그 지점에 이르
면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달빛이 은은하게 소나무에 걸린다. 구태
여 강은 건너지 않아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길목 식당에서 점심
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한 다음 시작되는 강변길에서 강마을 정취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다.

금강 휴게소에서는 휴게소를 벗어나지 않고 지역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의 풍광은 흐르는 강물 따라 길도
우리 부부의 단골집이다. 이름 없는 포장마차란 사실에 비해 음
식의 맛과 주인의 정스러움, 게다가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짐이 그
만이다.

나는 아쉬운 대로 ‘금빛너울’이라 부른다. 주인 부부도 싫
지 않은 눈치다. 철 따라 산새를 보고, 느끼고, 감동받고, 때로는
자연과 나란히 서서 행복을 견주어 보기도 하고 그저 강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한다. 이 금강이 계속 흐르는 것을 보면 나는 나 떠난
같이 흐르며 여행자의 갈 길을 돕는다. 이곳에 서면, 금강이 옥천
의 깊은 산골을 따라 휘어 돌아 아득히 멀어져 가는 아름다운 풍
경이 펼쳐진다. 또한 옥천의 크고 작은 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금강에 아침 햇살이 늦게 찾아오면 어떤가. 대신 해가 서산 너머
로 질 때까지 온종일 볕이 비춰 금빛너울을 만드니 이 또한 좋다.
마음속에 그윽한 풍경 하나 담고 강변을 다시 걸으면 수줍은 색시
처럼 산모퉁이 돌아든 곳에 숨어 있는 추억을 발견할 것만 같다.
금강이 급하게 북동으로 휘어 도는 물길을 따라 간다. 길옆 산자락
은 급히 내려와 급류를 받아 내느라 모래톱 하나 없지만 강 건너는
금빛모래 반짝이는 강촌의 정경이 포근하다.

강마을 정취를, 유장하게 흐르는 금강의 여유로움을 즐기다 보
면 어느새 해가 기운다. 사람들과 대화, 햇빛과 물빛을 이야기하
고, 바라보고, 마치 유년 시절 할머니가 나의 등을 토닥거리는 것
같은 행복감에 감긴다. 오늘도 금강 휴게소 강물에 금빛이 제법 너
울거린다.
나는 이 여름을 살고 있다.

 

 

<저자 소개> 김영미 서울출생,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2012 명작선 한국(韓國)을 빛낸 문인(文人)》(천우) 선정, 작가한국문인협회 회원, 옥천문인협회 감사,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정지용 시와 주체의식'(태학사, 2015) '2016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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