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어머니는 분명 부자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물려주기 힘든 유산을 육 남매에게 고루 물려주셨으니 말이다. 내
로라하는 재산가가 죽고 난 뒤 자식들이 재산 싸움을 하더라는 말
을 들으면 나는 피식 웃는다. 세상에 우리 어머니만 한 부자가 없
구나 싶어서다.

아들 둘과 딸 넷인 우리 남매들은 건강하다. 막내와 한 살 차인
내가 오십이 되니 다들 중년을 넘었고, 나이에 비해 모두들 건강하
다. 등산마니아인 오빠는 아직도 산을 제집처럼 오르내린다. 남들
이 ‘웰빙’ 하며 음식을 골라 먹느라 야단법석을 떨 때, 우리 형제들
은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위대한 유산 덕
분이다.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가마솥에 밥을 안치고 밭으
로 뒷마당으로 분주한 아침을 준비하신다. 뜸이 들고 있는 가마솥
곁에 있으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사이로 구수한 냄새가 참 좋다.
뚜껑을 비스듬히 밀듯이 열면 그 안엔 밥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감자, 계란찜, 호박잎 등등이 자기 색을 드러내며 손을 내미는 것
같이 봉긋이 올라와 있다. 이쯤 되면 아궁이에서는 생선이 익어가
고 남은 불씨로 김이 구워지니 그 냄새가 기막히다.

우리 집에서 아침은 무척 중요하다. 하루의 시작을 밥으로 여기
시는 할아버지로 인해 아침밥을 먹지 않고는 모든 일들이 진행되지
않을 지경이다. 큰 상과 작은 상, 두 상을 봐야하는 어머니의 고달
픔이 느껴진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눈을 감았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열 식구 밥에 여섯 개의 도시락 준비로 발을 동동 구르시던 어머니
였다.

어머니의 손재주는 남달랐다. 손수 알록달록 털실로 짠 조끼, 모
자, 장갑, 양말 등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밭농사도 얼마나
잘 지으셨던지 이웃과 나누어 먹었던 적도 여러 해다. 어머니가 부
엌에 떴다 하면 후다닥 밥상이 차려진다. 그렇다고 찬이 변변치 않
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7첩 반상은 기본이다. 그뿐인가, 간식도
척척 만들어 주셨다. 강낭콩 박힌 누런 밀빵, 설탕이 솔솔 뿌려진
누룽지와 건빵 튀김은 단연 최고였다. 어머니에게 가마솥은 만능
요리기다. 빵, 떡, 약식, 거기다 도토리묵까지 안 되는 요리가 거
의 없었다. 부엌의 전열기구라야 난로가 고작이었건만 그 많은 음
식을 척척 해 내신 걸로 보아 어머니는 분명 능력자다.

 

아버지가 불거진 얼굴로 돌아오시거나 막내가 속이 좋지 않으면
동치미를 내놓으셨다. 여름이면 오이지를 겨울이면 동치미로 바꿔
가며 발효음식도 해주셨다. 식구 중 머리가 아프거나 배앓이를 하
면 약 대신 음식으로 대신했고 그 약효는 꽤 잘 들었다. 저녁 설거
지를 마치고도 무언가를 만드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던 어머니. 넉
넉치 않은 형편에 연년생으로 육 남매를 두셨으니 먹을거리 걱정에
손이 무척이나 바빴을 것이다. 우리 집 비상약은 전부 어머니 손에
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침을 거르
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 건강지킴이는 바로 어
머니의 밥상이었다. 손수 지으신 신선한 야채와 잡곡밥, 생선 위주
의 음식 덕분이리라. 바로 현대인의 웰빙식단이 아니던가.

팔십을 넘기신 어머니 역시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다. 여전
히 집 앞의 조그만 공간에 고추며 상추, 토마토 등을 심어 드신다.
아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밥 얘기로 인사를 대신 하신다. 아침은
드시고 나오셨는지, 시장 통 어디의 물건들이 신선하고 값 좋다든
지. 묻지도 않는 답으로 그분들과 대화하시는 어머니. 요즘은 집
앞에 공원이 생겨 이곳에 자주 모이신단다.

따지고 보면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형제들이 어머니에게는
건강수표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식습관 덕
분에 우리 형제들은 누구보다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바로 건강이라는 유산 말이다.
TV만 켜면 여기저기서 건강 상식을 소개한다. 그중 열풍을 일으
키고 있는 것이 해독주스나 청혈주스, 유산균 등이다. 그런데 복잡
하다. 음식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을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고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따라 하기가 만만치 않다. 돌이
켜보면 신선한 재료로 만든 식단이 건강을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라는 첨가물이 늘 있었다.
더욱이 어머니의 밥상이 그립다.

 

<저자 소개> 김영미 서울출생,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2012 명작선 한국(韓國)을 빛낸 문인(文人)》(천우) 선정, 작가한국문인협회 회원, 옥천문인협회 감사,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정지용 시와 주체의식'(태학사, 2015) '2016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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